어떤 경제 주체의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이득이나 손해를 끼치면서도 그에 대한 대가를 받거나 지불하지 않는 ‘외부 효과’가 발생하면 자원이 비효율적으로 배분된다. 상품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매연으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도 해당 기업이 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면, 기업이 매연을 줄일 경제적 유인이 없으므로 매연은 계속해서 발생할 것이다. 이처럼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고도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현상을 ‘부정적 외부 효과’라고 한다. 반대로 의도하지 않게 다른 사람에게 이득을 주는 경우도 있다. 과수원 옆에서 양봉업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과수원 주인은 양봉업자에게 의도하지 않게 꽃의 꿀을 제공하여 이득을 주고도 그에 대한 대가를 받지 않는다. 이처럼 다른 사람에게 의도하지 않게 이득을 주고도 그에 대한 대가를 받지 않는 현상을 ‘긍정적 외부 효과’라고 한다.
‘나비 효과’란 베이징에 날아다니는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 토네이도를 일으키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는 기상학적 측면이 아닌 환경 문제에도 적용될 수 있다. 내가 잠시 냉장고 문을 오래 열고 서 있는 행위가 지구 온난화로 이어져 몰디브와 같이 아름다운 섬을 바다에 잠기게 하고, 휴지나 종이를 낭비하는 행위가 무분별한 벌목을 야기하여 사막화로 이어질 수 있다.
자연은 인간의 이익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니고 있으므로 자연의 어떤 존재도 인간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만 고려될 수 없다. 생태 중심주의는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다는 사고방식을 거부하고 전체 생태계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도록 한다. 나아가 인간이 생태계를 보전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일깨움으로써 환경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준다. 하지만 생태 중심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모든 자연 개발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또한 문제가 있다. 우리가 기본적인 삶을 유지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받으며 살아가기 위해 어느 정도의 자연 개발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자연스럽다’라는 말처럼 매몰스럽고 정나미가 떨어지는 말도 드물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이기주의적인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은 인간의 힘을 더하지 않은 채 우주 사이에 저절로 된 그대로 그냥 있는 것이 제 본성이기 때문이다. 아무 데나 나는 풀도 이름이 없는 풀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농부는 저마다 논밭에 심고 가꾸는 것이 아닌 것은 죄다 잡풀이라고 한다. 자기에게 필요할 때는 나물도 되고 화초도 되고 약초도 되고 목초도 되고 거름도 되고 하는 풀도 필요가 없을 때는 잡풀이 되는 것이다. 잡풀로 그치는 것만도 아니다. 논밭에 나서 서로가 살려고 작물과 경쟁을 할 때는 여지없이 농부의 원수가 되어 낫에 베이거나 호미에 뽑히거나 농약에 마르거나 하여 덧없이 죽어 가기 마련이다. 논밭의 작물은 주인의 발걸음 소리에 자란다는 말을 들을 때 잡풀의 서러움은 그 무엇에 견주어 말한대도 성에 찰 리가 없을 터이다.
[가][나]는 ‘영향이 번지는 원리’, [다]는 ‘자연을 바라보는 가치관’, [라]는 그 가치관이 시험받는 구체적 장면입니다. 앞 문항의 답이 다음 문항의 논거가 되므로 1→2→3 순서로 개념을 쌓아가세요.
어떤 경제 주체의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이득이나 손해를 끼치면서도 그에 대한 대가를 받거나 지불하지 않는 ‘외부 효과’가 발생하면 자원이 비효율적으로 배분된다. 상품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매연으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도 해당 기업이 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면, 기업이 매연을 줄일 경제적 유인이 없으므로 매연은 계속해서 발생할 것이다. 이처럼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고도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현상을 ‘부정적 외부 효과’라고 한다. 반대로 의도하지 않게 다른 사람에게 이득을 주는 경우도 있다. 과수원 옆에서 양봉업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과수원 주인은 양봉업자에게 의도하지 않게 꽃의 꿀을 제공하여 이득을 주고도 그에 대한 대가를 받지 않는다. 이처럼 다른 사람에게 의도하지 않게 이득을 주고도 그에 대한 대가를 받지 않는 현상을 ‘긍정적 외부 효과’라고 한다.
‘나비 효과’란 베이징에 날아다니는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 토네이도를 일으키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는 기상학적 측면이 아닌 환경 문제에도 적용될 수 있다. 내가 잠시 냉장고 문을 오래 열고 서 있는 행위가 지구 온난화로 이어져 몰디브와 같이 아름다운 섬을 바다에 잠기게 하고, 휴지나 종이를 낭비하는 행위가 무분별한 벌목을 야기하여 사막화로 이어질 수 있다.
자연은 인간의 이익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니고 있으므로 자연의 어떤 존재도 인간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만 고려될 수 없다. 생태 중심주의는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다는 사고방식을 거부하고 전체 생태계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도록 한다. 나아가 인간이 생태계를 보전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일깨움으로써 환경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준다. 하지만 생태 중심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모든 자연 개발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또한 문제가 있다. 우리가 기본적인 삶을 유지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받으며 살아가기 위해 어느 정도의 자연 개발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자연스럽다’라는 말처럼 매몰스럽고 정나미가 떨어지는 말도 드물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이기주의적인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은 인간의 힘을 더하지 않은 채 우주 사이에 저절로 된 그대로 그냥 있는 것이 제 본성이기 때문이다. 아무 데나 나는 풀도 이름이 없는 풀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농부는 저마다 논밭에 심고 가꾸는 것이 아닌 것은 죄다 잡풀이라고 한다. 자기에게 필요할 때는 나물도 되고 화초도 되고 약초도 되고 목초도 되고 거름도 되고 하는 풀도 필요가 없을 때는 잡풀이 되는 것이다. 잡풀로 그치는 것만도 아니다. 논밭에 나서 서로가 살려고 작물과 경쟁을 할 때는 여지없이 농부의 원수가 되어 낫에 베이거나 호미에 뽑히거나 농약에 마르거나 하여 덧없이 죽어 가기 마련이다. 논밭의 작물은 주인의 발걸음 소리에 자란다는 말을 들을 때 잡풀의 서러움은 그 무엇에 견주어 말한대도 성에 찰 리가 없을 터이다.
어떤 경제 주체의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이득이나 손해를 끼치면서도 그에 대한 대가를 받거나 지불하지 않는 ‘외부 효과’가 발생하면 자원이 비효율적으로 배분된다. 상품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매연으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도 해당 기업이 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면, 기업이 매연을 줄일 경제적 유인이 없으므로 매연은 계속해서 발생할 것이다. 이처럼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고도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현상을 ‘부정적 외부 효과’라고 한다. 반대로 의도하지 않게 다른 사람에게 이득을 주는 경우도 있다. 과수원 옆에서 양봉업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과수원 주인은 양봉업자에게 의도하지 않게 꽃의 꿀을 제공하여 이득을 주고도 그에 대한 대가를 받지 않는다. 이처럼 다른 사람에게 의도하지 않게 이득을 주고도 그에 대한 대가를 받지 않는 현상을 ‘긍정적 외부 효과’라고 한다.
‘나비 효과’란 베이징에 날아다니는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 토네이도를 일으키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는 기상학적 측면이 아닌 환경 문제에도 적용될 수 있다. 내가 잠시 냉장고 문을 오래 열고 서 있는 행위가 지구 온난화로 이어져 몰디브와 같이 아름다운 섬을 바다에 잠기게 하고, 휴지나 종이를 낭비하는 행위가 무분별한 벌목을 야기하여 사막화로 이어질 수 있다.
“둘 다 영향이 퍼지는 것”으로 뭉뚱그리면 감점입니다. 외부 효과는 ‘대가의 유무’(경제적·양방향), 나비 효과는 ‘작은 원인의 증폭·예측 불가’라는 초점의 차이를 개념어로 분명히 구분하세요.
어떤 경제 주체의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이득이나 손해를 끼치면서도 그에 대한 대가를 받거나 지불하지 않는 ‘외부 효과’가 발생하면 자원이 비효율적으로 배분된다. 상품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매연으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도 해당 기업이 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면, 기업이 매연을 줄일 경제적 유인이 없으므로 매연은 계속해서 발생할 것이다. 이처럼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고도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현상을 ‘부정적 외부 효과’라고 한다. 반대로 의도하지 않게 다른 사람에게 이득을 주는 경우도 있다. 과수원 옆에서 양봉업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과수원 주인은 양봉업자에게 의도하지 않게 꽃의 꿀을 제공하여 이득을 주고도 그에 대한 대가를 받지 않는다. 이처럼 다른 사람에게 의도하지 않게 이득을 주고도 그에 대한 대가를 받지 않는 현상을 ‘긍정적 외부 효과’라고 한다.
자연은 인간의 이익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니고 있으므로 자연의 어떤 존재도 인간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만 고려될 수 없다. 생태 중심주의는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다는 사고방식을 거부하고 전체 생태계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도록 한다. 나아가 인간이 생태계를 보전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일깨움으로써 환경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준다. 하지만 생태 중심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모든 자연 개발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또한 문제가 있다. 우리가 기본적인 삶을 유지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받으며 살아가기 위해 어느 정도의 자연 개발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가)의 두 유형은 평가의 ‘두 렌즈’입니다. 부정적 외부 효과 렌즈와 긍정적 외부 효과 렌즈로 각각 (다)를 비춰, 어떤 점이 타당하고 어떤 점이 한계인지 나누어 평가해야 합니다.
두 유형 중 하나만 쓰거나, 생태 중심주의를 (다)에 나온 그대로 요약만 하면 ‘평가’가 아니라 ‘설명’에 그칩니다. 두 렌즈 각각에서 타당한 점을 밝히고, (다)가 스스로 인정한 한계까지 함께 평가해야 합니다.
(나) = 사소한 행위가 예측하기 어려운 큰 결과로 증폭된다 / (다) = 자연은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니지만, 삶을 위한 개발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이 두 가지를 (라)의 농부의 행위에 적용해봅니다.
그러고 보면 ‘자연스럽다’라는 말처럼 매몰스럽고 정나미가 떨어지는 말도 드물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이기주의적인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은 인간의 힘을 더하지 않은 채 우주 사이에 저절로 된 그대로 그냥 있는 것이 제 본성이기 때문이다. 아무 데나 나는 풀도 이름이 없는 풀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농부는 저마다 논밭에 심고 가꾸는 것이 아닌 것은 죄다 잡풀이라고 한다. 자기에게 필요할 때는 나물도 되고 화초도 되고 약초도 되고 목초도 되고 거름도 되고 하는 풀도 필요가 없을 때는 잡풀이 되는 것이다. 잡풀로 그치는 것만도 아니다. 논밭에 나서 서로가 살려고 작물과 경쟁을 할 때는 여지없이 농부의 원수가 되어 낫에 베이거나 호미에 뽑히거나 농약에 마르거나 하여 덧없이 죽어 가기 마련이다. 논밭의 작물은 주인의 발걸음 소리에 자란다는 말을 들을 때 잡풀의 서러움은 그 무엇에 견주어 말한대도 성에 찰 리가 없을 터이다.
(라)를 “농부가 자연에 이기적이다”라는 감상으로만 끝내면 앞 두 문항과 단절됩니다. (나)의 파급 개념과 (다)의 주장·한계를 모두 불러와 농부의 행위를 분석해야 종합적 사고력 평가에서 고득점입니다. ‘자유롭게 말하라’는 발문이라도 근거 개념이 있어야 합니다.